시간의 흐름 속, 기억의 단편들
그리운 그 시절을 떠올리며..
2025년 5월 29일
그때 나에게는 낭만이 있었다
MSX 8비트 컴퓨터 앞에 앉았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투박한 기계였지만, 그 앞에 앉을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화려한 GUI 따위는 없었다. 오직 텍스트뿐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탁한 공기로 가득찬 컴퓨터 학원,.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그 단색 화면 위에서 GW BASIC 코드를 한 줄 한 줄 입력할 때의 그 설렘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10 PRINT "HELLO WORLD"
20 GOTO 10
RUN
무한히 반복되는 “HELLO WORLD“를 보며 나는 마치 공상 과학 영화의 한 장면처럼 미래를 만지작거리는 기분이었다.
PC TOOL로 디스크를 관리하고, LOTUS 123으로 스프레드시트를 만지작거렸다. X86 640KB 메모리의 한계 속에서도 나는 영화같은 낭만을 꿈꿨다. 플로피 디스크 한 장 한 장이 보물 상자였고, 도트 그래픽 허큘리스 모니터의 흑백 화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소중히 간직하고 꺼내보며 그저 좋았던 그 시절.
밤이 깊어도 친구와 프로그래밍을 멈출 수 없었다. 어머니의 잔소리가 들려와도 젤리아드의 모험을 멈출 수 없었고, 허큘리스 화면에서 삼국지의 전략을 세우느라 새벽이 되는 줄도 몰랐다. 대항해시대에서 신대륙을 발견하는 그 순간의 짜릿함이란.
그때 나는 컴퓨터 전공을 꿈꿨다. 이 기계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무엇을 잃었는가
지금 내 앞에는 고사양 컴퓨터가 있다. 어린 시절 꿈꿔왔던 것보다 몇천 배 빠른 시스템이다. 매일같이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 나온다. 컴퓨터를 켤 때마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알림이 끊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클라우드 위에 있다. 내 파일도, 내 프로그램도, 내 추억까지도 남의 서버에 저장되어 있다. 나는 남의집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쫓아가기 힘들다. 너무 빠르다. 너무 복잡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낭만이 사라졌다.
화려한 GUI를 보며 나는 혼자 그 구식의 단색 텍스트를 추억한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나라는 한 개인의 소중한 기억들—부모님, 어릴 적 친구들, 흑백 모니터 앞에서 밤새워 씨름했던 그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비싼 유료 프로그램들을 사용하며 나는 점점 지쳐간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것을 사용하니 나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획일화된 도구들, 비효율적인 워크플로우, 그리고 끝없는 구독료들.
물론 효율적으로 편리하게 잘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하지만 나는… 점점 무료해진다. 점점 피곤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 낭만을 품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도스를 다시 쓸 수는 없다. 어린 시절의 그 기계로 돌아갈 수도 없다. 현실은 나를 오늘의 자리에 세워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나는 여전히 그 단색 텍스트 화면에 끌린다. 오늘도 나는 어느 터미널 창의 검은 바탕 위 흰 글자들을 보며 가슴이 조용히 뛴다. 깜빡이는 커서 하나에도 설렌다. 아무런 장식 없이, 오직 글자만으로 이루어진 그 세계가 왜 이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것은 내게 단순한 향수(鄕愁)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 단색 화면 속에는 내가 지금 잃어버리고 있는 어떤 것—그 시절의 소중한 기억, 여전히 오늘도 소중한 가치를 담아내는 기억들—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철없던 친구들
중고 XT 컴퓨터를 소중히 바라보던 나를 웃으며 바라보시던
살아 생전의 어머니의 모습..
나는 그 마음과 기억을 버리고 싶지 않다. 세상이 아무리 빨라져도, 화려함이 아무리 흘러넘쳐도, 나는 그 옛 낭만의 기억을 마음에 품은 채 살고 싶다. 비록 내 손이 오늘의 도구를 쓰고 있을지라도, 내 마음은 여전히 그 단색의 모니터 화면을 향한다.
이 시대가 나를 낡았다고 부르더라도
이 가속의 시대에 나는 자주 낡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이 빨라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알고리즘이 취향을 결정하고, 클라우드가 기억을 대신 저장한다. 사람들은 더 빠른 것, 더 새로운 것, 더 효율적인 것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 속도 앞에서 나는 가끔 길을 잃는다.
하지만 나는 이 시대의 리듬에 나를 꼭 맞추고 싶지 않다. 모든 사람이 달려가는 방향이 반드시 옳은 방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시대가 나를 낡았다고 부르더라도, 내 모습으로 남고 싶다.
느린 것이 좋다. 조용한 것이 좋다. 오래된 것이 좋다.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읽고, 한 구절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오래 듣는 것이 좋다. 최신 트렌드를 놓쳐도 괜찮다. 유행에서 비껴나도 괜찮다. 난 원래 느린 사람이다. 나는 나의 자리에서 나의 속도로 걷고 싶다.
이것은 단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백이다.
나그네는 다른 리듬으로 걷는다
성경은 나 같은 사람을 “나그네“라고 부른다.
“These all died in faith, not having received the promises, but having seen them afar off, and were persuaded of them, and embraced them, and confessed that they were strangers and pilgrims on the earth.” — Hebrews 11:13, KJV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같이 이 땅에서 “strangers and pilgrims”—나그네요 순례자였음을 고백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속도와 다른 리듬으로 살았고, 이 세상의 기준과 다른 기준으로 판단했으며, 이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그네는 급하지 않다. 순례자는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본향을 바라보며 걷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난 한 성도이고, 지역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다. 이 정체성은 내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내가 무엇을 읽는지, 무엇을 쓰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무엇을 굳이 따라가지 않는지까지.
이 가속의 시대에, 나는 굳이 유행에 뒤쳐진 자리에 남고 싶다. 세상이 나를 낡았다고 불러도, 뒤처졌다고 말해도, 시대에 걸맞지 않다고 평가해도—그래도 괜찮다. 나는 그저 나그네의 걸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어린 시절의 낭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새로운 자리에서 다시 숨 쉴 뿐이다.
MSX 앞에 앉았던 설렘, XT 화면의 단순함.
GW BASIC으로 한 줄 한 줄 코드를 치던 그 집중력.
플로피 디스크 한 장 한 장을 세어가며 모든걸 가진 것 같았던 자족함.
그 시절의 좁은 내 방안…로딩과 함께 울리던 그 굉음속의 인내.
나는 여전히 그것을 추구한다.
나는 버려질까?
그래도 상관없다.
이 구식 나그네의 모습으로 살아가련다.
인생 후반전.
나는 과거 추억의 서랍 속에서 컴퓨터 전공자가 되고 싶었던 그 시절의 기억을 가져와 추억 속 낭만 위에 복음을 세우는 사역자가 되고자 한다. 이것도 내 부르심 안에 포함된 것일까?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새로운 형태로 태어날 뿐이다.
어릴적 그 시절의 단색 텍스트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품은 한 나그네가,
세상과 조금 다른 리듬으로 걷고 싶어서 적어 내려간 작은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