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의 서랍을 열며

50을 바라보는 한 교회 사역자의 새로운 시작

2025년 5월 29일


뒤돌아보는 시간들

50이 가까워지고 있다.

무언가 열심히 달려온 삶이었다. 그런데 요즘 부쩍 뒤를 돌아보는 순간이 많아졌다. 특히 2년 전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신 후로는 더욱 그렇다.

소중했던 추억들, 실패했던 기억들, 그러나 여전히 버리기 아까운 과거의 산물들… 나는 그런 것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며 지낸다.

어린 시절 컴퓨터 앞에서 밤새워도 지치지 않던 순수한 열정, 신학교에서 품었던 사역의 꿈들, 결혼과 함께 맞닥뜨린 현실의 무게,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진 크고 작은 실패들과 좌절들, 그리고 완전히 무너진 자존감…

그 모든 기억들이 때로는 따뜻한 그리움으로, 때로는 아픈 후회로 내 마음을 스쳐 지나간다.


신학교 시절의 큰 꿈들

돌이켜보면 신학교 시절의 나는 꿈이 있었다.

해외 선교를 꿈꿨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은 사역을 계획했다. 동기들과 뜨겁게 토론하며 “우리가 바꿔보자”고 다짐했던 그 열정…

항상 ‘나는 부족하다’라고 마음 한편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기도하면 이루어질 것 같았고,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사용하실 것 같았다. “하나님, 저를 사용해주세요”라고 채플 시간에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던 그 간절함이 생각난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결혼과 함께 온 현실

결혼은 내 삶의 가장 큰 축복이었지만, 동시에 현실과의 첫 번째 만남이기도 했다.

아내와 함께 꾸린 보금자리는 소중했지만, 현실적인 부담과 마주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그 기쁨과 동시에 느꼈던 책임감의 무게… “이제 정말 어른이 되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모험적인 사역보다는 안정적인 사역을, 도전적인 목표보다는 현실적인 목표를 선택하게 되었다. 가족을 책임지고 현실을 살아야 한다는 명분 아래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그런 생계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 나 자신에 대해서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비전을 가질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무언가를 바꾸는 것보다 내 자신을 바꿔야 하는 것이 더 시급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보게 되었다.


작아진 꿈들과 쌓인 후회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신학교 시절 “무언가를 변화시키겠다”라는 생각은 어느새 “내게 맡겨진 일이나 잘 감당하자”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자!”라는 비전은 “그저 주위 사람들이라도 제대로 돌보자”로 축소되었다.

당시 나는, 이것이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타협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적인 일들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는데 모든 일들이 잘 될 턱이 있겠는가. 작은 실패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놓친 기회들, 미루고 미룬 계획들… 이것들이 모여 나는 사역의 길에서 이탈해 직장을 구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는 정말 부르심이 있는 사람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세상 속에서 길을 잃다

그렇게 나는 사역의 길에서 벗어나 직장인이 되었다.

“일단 가정을 안정시키고,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후에 다시 사역을 생각해보자.”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현실적인 선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은 쉽지 않았다. 전공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이 뒤늦게 시작하는 직장 생활은 여러모로 힘들었다. 동료들보다 나이는 많지만 경험은 부족했고, 업무에 적응하느라 매일이 전쟁 같았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마음 속 깊은 곳의 갈등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야근을 하며 늦은 밤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내가 정말 이 길이 맞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어떤 확신이 있었던 그 시절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세상의 안정과 내적 공허감

직장 생활에 점차 적응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월급이 나오니 가정 생활은 조금 더 안정되었고, 무언가 더 나은 환경으로 바뀐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은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점점 더 메말라갔다.

성과와 경쟁. 그리고 점심시간에 동료들이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업무나 돈, 성공, 동료들과 상사들의 험담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인가?”

퇴근 후 집에 돌아와 혼자 늦은 밤에 자주 드는 생각이었다. 경제적으로는 더 나아졌지만, 영적으로는 점점 메말라가는 느낌이었다.


건강의 경고와 내적 갈등의 심화

몇 년이 지나면서 몸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여러 증상들이 나타났다. 잦은 두통, 소화불량, 만성피로… 하지만 이런 것은 누구나 겪고 사는 흔한 문제가 아니던가?

“정말 이대로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싸움

내 마음 속의 갈등은 늘 내가 겪는 고통이었다.

매주 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찬양을 부를 때마다, 설교를 들을 때마다… “나는 왜 여기 앉아있지? 저 강단에 서야 하는 사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께서 몇 번 나에게 부르심을 확인해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러나 나는 의도적으로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또 내적 갈등에 휩싸였다.

특히 젊은 사역자들이 열심히 사역하는 모습을 볼 때면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도전, 후회, 죄책감… 모든 감정들이 뒤섞여서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하나님, 제가 잘못 선택한 건가요?”
“아니면 애초에 제가 착각했던 건가요?”
“정말 저에게 부르심이 있었던 건가요?”

밤마다 이런 기도를 하면서도, 명확한 답은 들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시간이 더 흘러 모든 것이 한계에 다다랐다.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다. 세상에서도 여러 어려움들이 겹쳤고, 성공이라는 것도 결국 허상임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날 밤, 혼자 조용히 앉아서 지난 몇 년을 돌아보다가 눈물이 났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나는 지역 교회의 담임 목사님과 상담을 했고 목사님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마음을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결국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하고 안정을 찾아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마침내 항복하다

그래서 나는 항복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 합리화하지 않기로 했다. 내 마음 속에서 늘 소리치고 있던 그 음성이 하나님의 부르심이 맞다면, 그 부르심에 순종하기로 결정했다.

“하나님, 모든 것 그냥 내려 놓고 항복하겠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겠습니다.”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순종만 하겠습니다.”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치고, 다시 사역의 길로 돌아가기로 결단했다. 가족들도 그 결정을 지지해주었다. 고무적인 일은 아내도 이 일에 마음을 함께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마치 오랫동안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물론 앞날은 불확실했다. 경제적 불안도 있었고, 나이도 많아진 상태에서 다시 사역을 시작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평안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순종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죽음 앞에서 마주한 후회

사역자 후보생으로 열심히 교회를 섬기는 중,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병원 침대에 누워있을 때 나는 생각했다. 아직 투병 중인 어머니와 어린 두 자녀를 놓고 내가 먼저 떠날 수도 있다는 현실을.

이런 불효자가 어디 있는가?
이런 무책임한 가장이 어디 있는가?

(이미 나는 그 전에도 더 심하게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때만큼 죽음이 현실적으로 와 닿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 받았던 가장 큰 충격은 사역에 헌신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주님을 위해 한 일이 너무나도 적다는 깨달음이었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내 삶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었을까?”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서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회계 보고 할 수 있을까?”

후회가 몰려들었다. 투병중인 어머니를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 신학교에서 꿈꿨던 비전들과 현실 사이의 간극, 수 없이 미룬 일들, 제대로 하지 못한 사역들, 깊이 있게 준비하지 못한 설교들, 가족과 미쳐 나누지 못했던 사랑의 나눔들,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후회의 생각과 감정들…


새로운 결심: 후회 없는 삶

회복되면서 나는 강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내가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

그런데 그 ‘후회 없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과거를 지우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모든 것을 현재와 연결시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신학교 시절의 그 큰 꿈들도, 결혼 후의 현실적 선택들도, 크고 작은 실패들과 후회들도… 이 모든 것들이 나라는 사람을 만든 소중한 경험들이라는 것을.

하지만..

죽음이라는 강을 몇 번씩 건넜음에도,
나는 여전히 교훈을 얻지 못한 사람처럼
그 시간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그때 그 마음을 계속 내 마음에 새겨 잃어버리지 않도록.

모든 세대에 자신을 계시하기 위해
‘기록’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신 하나님의 방법을 한 번 사용해 보자.


추억의 서랍에서 꺼내온 보물들

나는 추억의 서랍을 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열정과 호기심을 꺼내와서, 지금의 사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전에 가졌던 비전을 다시 꺼내와서, 비록 규모는 작아졌지만 본질은 잃지 않은 새로운 꿈을 꾸고 싶다.

왜 나는 이렇게 뒤늦게야 알게 된 걸까? 과거의 실패들도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을. 그 실패들이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들었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을.

나는 그것을 머리로만 알았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

누군가와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신다.

40-50대가 되면 누구나 겪는 고민들이다. 젊은 시절의 큰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결혼과 육아로 인해 개인적 목표를 수정해야 하는 것, 쌓인 실패들과 후회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

특히 사역자들에게는 더욱 깊은 고민이 된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용하고 계실까?” “지금 나의 섬김이 하나님께서 특히 사역자들에게는 더욱 깊은 고민이 된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용하고 계실까?” “지금 나의 섬김이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실만한 것일까?”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필요했다는 것을 더 피부로 느끼게 된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열정도, 결혼 후의 겪었던 현실도, 실패를 통한 겸손함도…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소중한 재료들이라는 것을.


새로운 여정을 향한 기대

그래서 나는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앞을 바라본다.

50을 앞둔 이 시점에서, 과거의 모든 경험을 자산으로 삼아 정말 의미 있는 일들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젊은 시절처럼 무모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현실에 매몰되지도 않는, 성숙한 도전을 해보고 싶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들을, 지혜롭게 연결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것이 소중한 추억이든, 생각조차 하기 싫은 아픔과 상처이든 간에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작은 아이디어들과 시행착오들을 같은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함께 걸어갈 사람들을 찾습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나눌 이야기들은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다.

50을 앞둔 한 젊은(?) 사역자가 과거의 모든 경험을 현재와 연결시키려고 노력하는 과정들, 작은 시행착오들과 소박한 깨달음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고민들과 그에 대한 나름의 답변들

이런 이야기들이 나와 비슷한 여정을 걸어온 분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기를, 고민하는 사역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다음 세대에게는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사람의 솔직한 경험담이 되기를, 그리고 누군가의 작은 깨달음이 나에게 또 다른 배움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추억의 서랍을 열며 시작하는 새로운 여정을 떠나고자 한다.


“I press toward the mark for the prize of the high calling of God in Christ Jesus.” — Philippians 3:14, KJV

이 글은 과거의 모든 경험을 현재와 연결하려는 한 사역자의 진솔한 고백입니다.


— Sojourner, 옛길 위에서

Similar Pos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